산하온환경연구소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핵실험 사건(1974년)
     산하온 (2007-04-04 오후 9:04:20)   Hit : 2418   Vote : 502

 

사건의 발단

이 사건은 태평양에서 실시된 프랑스정부의 핵실험을 둘러싸고 오스트리아 대 프랑스, 뉴질랜드 대 프랑스 사이에서 일어난 분쟁을 다룬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1945년 이래 대기, 지하 및 수중에서 약 200여 회에 걸쳐 핵무기 실험을 실시해 왔으며, 그중 상당수가 남태평양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1966년부터 1972년까지 거의 해마다 오스트레일리아 본토의 동쪽 6,000 km 떨어진 Mururoa 환초에서 수소폭탄과 고도의 핵장치 폭발실험을 하였으며, 1973년에도 대기 중 핵실험을 계획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1975년 이후에도 계속해서 핵실험을 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핵실험 부근지역은 금지구역과 위험구역으로 설정되어 선박과 항공기의 운항이 제한되었다.

인접국가인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정부는 프랑스의 핵실험 결과 방사능 낙진이 그들 국가에 떨어져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을 우려하였다. 이들 정부는 프랑스 정부에 태평양상의 핵실험 중지를 요구하는 한편 핵실험에 관한 모든 정보 제공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프랑스 정부는 어떤 항의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강행할 것이며, 어떠한 정보도 제공할 수 없음을 주장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정부는 핵실험에서 발생하는 방사능 낙진이 이들 국가의 영토 및 남반구 도처에 내려앉아 모든 식품과 인체를 오염시키고, 해양자원과 주변 환경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준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핵실험으로 인하여 공해 및 그 상공의 이용권을 침해받게 된다고 보았다.

소송 제기

1973년 5월 9일 이들 두 국가는 국제사법법원(ICJ)에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핵실험 중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사건은 오스트레일리아와 프랑스, 뉴질랜드와 프랑스의 개별적 소송으로 진행되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가 각각 별도의 대리인을 내세워 소송과정에 참여하였으나, 소송목적과 쟁점, 법적 근거, 소송 진행시점 등은 거의 같다. 이 사건은 1973년부터 1974년 사이에 심리되었다.

당사자 입장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는 프랑스의 핵실험이 국제법에 위배되고 자국 영토와 국민 건강에 피해를 준다는 주장을 내세워 프랑스 정부가 앞으로 핵실험을 계속해서는 안된다는 판결을 내려주도록 법원에 요청했다. 또한 최종판결이 확정되기 전에 프랑스 정부가 잠정적으로 핵실험을 중지하도록 임시보호조치(interim measures of protection)를 내려줄 것을 요구하였다.

프랑스 정부는 국제사법법원이 이 사건에 대한 관할권을 갖지 않기 때문에 이 사건을 법원 목록에서 빼야 하며 임시조치도 내릴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자국의 태평양 지역 핵실험은 두 국가에 어떤 피해도 입히지 않았고, 어떠한 국제법도 위반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판결

이 사건 심리에서 쟁점이 된 것은 첫째, 최종 판결 전에 법원이 임시 보호조치를 취할 수 있는가? 둘째,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관할권을 갖고 있는가? 세째, 프랑스 정부의 핵실험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의 주장처럼 국제법상 불법행위로서 이를 중지해야 하는가? 하는 세가지 문제였다.

임시보호조치 문제에 대하여 법원은 두 국가의 피해 가능성을 고려하고 국제사법법원 규약(Statute of I.C.J) 제 41조에 근거하여 두 국가의 주장을 받아 들였다. 이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소송절차가 끝날 때까지 일시적으로 핵실험을 중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국제사법법원이 법원 관할권 문제와 불법행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심리를 하는 도중에 프랑스 정부는 핵실험을 중지하겠다는 일방적인 선언을 하였으며, 법원이 이를 받아 들여 소송절차를 종결시켰다. 이에 따라 임시보호조치는 효력을 잃게 되었고, 관할권 문제와 불법행위 문제는 법원의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채로 남겨지게 되었다.[I.C.J. Reports(1974), Nuclear Tests Case, Australia v. France, New Zealand v. France)

판결 이후

프랑스 정부는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내려진 후에도 Mururoa 환초에서 지하 핵실험을 계속하였으며, 1992년 미국, 영국, 러시아 등과 더불어 핵실험 유예 약속을 하고도 1995년 9월부터 Mururoa 환초 및 팡가타우파 환초에서 지하핵실험을 재개하여 세계 각국의 비난을 받았다.

대기, 수중, 지하 모든 곳에서의 핵실험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1996년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은 아직 효력이 발생되지 않았으며, 이 조약의 체결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미국조차 상원의 반대로 비준에 실패하였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이 협약에 서명한 최초의 대통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원의 거부로 협약을 비준하지 못한 것이다.(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의 효력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핵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44개국 모두의 비준이 필요하며, 현재까지 비준 절차를 끝낸 국가는 25개국이다.:동아일보 99/10/14일자)


* 제2차 핵실험 (1995년)

1995년 프랑스의 지하핵실험 재개 선언으로 촉발된 2라운드 핵실험 사건에서 뉴질랜드는 핵실험이 국제법상 뉴질랜드와 다른 국가들의 권리를 침해하며, 국제기준에 따르는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기 전에 핵실험을 실시하는 것은 불법적이라고 주장하였다.

뉴질랜드는 세대간 형평(inter-generational equity)과 사전예방주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의 문제도 제기하였다. 또한 국경을 넘는 피해를 일으키지 않을 의무는 그동안 국제관습법상 원칙으로 확립되었고, 다수의 국제조약이 방사능물질의 해양환경 투입을 허용하지 않음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ICJ는 1974년 판결이 “대기 중 핵실험”에만 국한되는 것이라는 이유로 사건 심리의 재개를 거부하였다. 이에 대해 Weeramantry 판사는 1974년 판결이 대기 중 핵실험에 의한 방사능 낙진뿐만 아니라 핵실험에 의해 야기되는 피해로부터 뉴질랜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재판부의 결정을 비판하였다.



   
        
 

Copyright(c) 2003, Redboard /skin by pnl | Monee